Re..讀東皐神道碑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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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곰 작성일11-10-24 22:49 조회287회 댓글0건본문
1. 좋은 글을 올려주시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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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위의 글(貞簡公李蓂神道碑銘)에 대하여 <소생등이 여러 종인께 보내드린 호소문의 내용>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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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호소문 80쪽 <아래 4째줄부터>의 기록
● 대제학 김귀영(金貴榮, 우의정)이 지은 정간공(貞簡公, 예안 李蓂, 좌의정, 1496~1572)의 신도비명에 … 그 선대의 휘는 도(棹)이며 고려를 도와 삼한을 평정한 태사이며, 그 후손 휘익(翊)은 보문각 제학, 휘변(昪)은 성균관 祭酒 … (…其先諱棹佐麗朝定三韓官至太師厥後諱翊寶文閣提學諱昪祭酒…)라고 기록되어 있다.
● 그 당시 우리 전의이씨는 영의정 휘탁(鐸), 좌참찬 휘준민(俊民), 도승지공 휘해수(海壽), 북병사 휘제신(濟臣) 등 여러 일가 어른들께서 벼슬을 하였는데 생전에는 일가라고 왕래한 적도 없으면서 사후 신도비명에 전의이씨 시조 태사공의 자손이라 한 것은 사리에 맞지 아니한 것이다.
● 비문을 지은 대제학 김귀영은 그 자손들이 제공한 자료에 의존하여 비문을 지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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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7년(1574)에 건립된 위 비명을 일별하면, 태사공에 대하여 적고, 바로 提學公 이하 직계 조상을 모두 기록하였지만 文莊公에 관한 기록은 없다.
고려사 열전에 기록되고, 僉議政丞을 지냈으며, 시문에 능하고, 사적이 뚜렷한 文莊公을 누락하고 碑文을 撰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점점 의문점만 생기고, 점점 미궁으로 빠져드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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