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莊公不幸無後遺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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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벌 작성일11-10-24 17:12 조회333회 댓글0건본문
제학공 휘 익(翊)께서 문장공의 손자냐, 아니냐를 두고 종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 간에 이견이 분분하고, 심지어 화수회 측으로부터 징계와 경고를 받는 후손이 있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하니, 매우 유감입니다.
우리 일문의 돈목을 위해서라도, 고려사 열전의 “子異 少穎悟 登第仕至成均樂正 先卒無子”와 동인지문의 “子彦昇 登辛丑科 官至成均樂正 先卒無子”에 대하여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명쾌하고 설득력 있는 해명이 필요한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우선 논란의 중심에 선 제학공 휘 익(翊)께서 실존 인물이라면 어딘가에 기록이 남아 있을 것이며, 이를 밝히는 일은 보학과 한학에 조예가 깊은 예안이씨 후손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봅니다.
고려말은 그야말로 격변기였습니다. 권력자 염흥방 일가의 몰락은 그와 관련된 많은 가문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과 변성명(變姓名)을 하게끔 강요했습니다. 예안이씨는 물론, 전의이씨도 피난은거(避難隱居)한 분이 한둘이 아니고, 송구하게도 배위(配位)를 알 수 없는 분도 계십니다.
판서공(判書公) 휘 송(竦)의 처부(妻父) 염제신과 관련된 문헌과 족보를 연구한다면, 예안이씨 선대가 전의이씨 상계와 분명 연결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젠 덮어둔다고 치유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종문의 모든 노유석학(老儒碩學)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고증(考證)을 해 주길 기대합니다.
후손들이 사방에서 십목소시(十目所視)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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