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文莊公不幸無後遺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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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곰 작성일11-10-24 21:59 조회283회 댓글1건본문
1. 넓은벌님!! 시의적절하신 글을 올려 주시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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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생은 문제의 호소문을 작성, 배포에 참여한 당사자로서,
넓은벌님의 글에 대하여 <왈가왈부>할 자격도 없고, <호소문>에서 <여러 종인>께 드릴 말씀을 다하였으므로 별 다른 말씀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3. 다만, 넓은벌님의 글중 소생이 절실히 공감하고 바라는 아래의 글만을 발취하여 보았습니다.
4. 시의적절하고 여러 종인들께서 공감할 글을 올려주시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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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우리 일문의 돈목을 위해서라도, 고려사 열전의 “子異 少穎悟 登第
仕至成均樂正 先卒無子”와 동인지문의 “子彦昇 登辛丑科 官至成均樂正 先卒無子”에 대하여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명쾌하고 설득력 있는 해명이 필요한 때가 온 것 같습니다.
⑵ 우선 논란의 중심에 선 제학공 휘 익(翊)께서 실존 인물이라면 어딘가에 기록이 남아 있을 것이며, 이를 밝히는 일은 보학과 한학에 조예가 깊은 예안이씨 후손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봅니다.
⑶ 이젠 덮어둔다고 치유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종문의 모든 노유석학(老儒碩學)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고증(考證)을 해 주길 기대합니다.
⑷ 후손들이 사방에서 십목소시(十目所視)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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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넓은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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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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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휘 익(翊)께서 보문각 제학에 올랐다면 문의공처럼 당대의 학자들의 문집이나 묘지석으로라도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도 아니면 배위를 찾아내는 일도 한 방편일것입니다.
지석은 절대연도입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지석은 삼국사기의 기록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저희 문중의 부제학 휘 명숭(命崇)공의 묘지석을 통하여 백부 첨지중추부사(판결사) 휘 원효(元孝)공에게 입후된 사실을 확실히 알았으며, 조부 휘 작(作)께서 증이조참의라는 것도 입증되었습니다. 적어도 임란, 호란전의 옛 어른들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확한 기록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