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옹(拙翁) 선생 약전
페이지 정보
넓은벌 작성일11-10-23 20:56 조회289회 댓글0건본문
율곡 선생은 "한 시대의 인물 중에 칭찬하고 권면할 만한 인물이 적다."고 하시면서, 도리어 공을 사림(士林)으로 인정해 주셨고, 당시에 박순 등이 정승으로 추천한 다섯 사람 중에 한 분이 바로 졸옹(拙翁) 선생이었다.
공은 4,5세에 시를 외우고, 약관의 나이에 글 솜씨에 능한 자들이 겨루는 대동접(大同接)에서 수석으로 뽑혔으며, 별시문과에 급제 했다.
예문관 봉교, 사간원 헌납, 사헌부 집의, 홍문관 직제학, 승정원 도승지, 부제학, 성균관 대사성, 전라도관찰사, 평안도관찰사, 이조․ 형조참판, 호조․ 이조․ 병조판서를 거쳐 의정부 좌참찬에까지 올랐다.
공의 휘는 문형(文馨)이고, 자는 형지(馨之)이며, 졸옹(拙翁)은 호이시다. 선생은 전의부원군 휘 사안(思安)의 둘째아들 함길도 경력 휘 좌(佐)의 현손으로 1510년 8월 11일에 태어났다.
이기, 이량, 윤원형의 죄를 극론했다가 그들의 무고로 좌천을 당하기도 했지만, 공은 한 번도 붕당(朋黨)을 맺은 적이 없이 정도를 지켰다.
공은 시강(侍講)을 잘하여 임금이 늘 곁에 두고 싶어 했으며, 매사에 부지런 했다. 성정이 청간(淸簡)하고 청환 요직에만 40년 동안 있었으나 재물을 늘리지 않았으며, 간혹 이웃 사람들에게 곡식을 빌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지방관으로 가선 유랑민을 구제하고, 다섯 번이나 어사(御使)가 되었으며, 퇴임 후엔 토담집에 살며 재능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1582년 6월 4일 돌아가시니, 풍덕 조강리에 장사지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