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경소식 2012년도 1월호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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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강 작성일12-01-09 13:59 조회144회 댓글2건본문
인경소식 2012년도 1월호 "판관공 휘 영동 할아버지"파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어 읽어보았습니다. 글을 작성하신 분들의 어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저는 영동 할아버지 후손으로 청주에서 살다가 저의 7대조 할아버지가 노성땅(현재는 논산시 광석면)에 정착하였습니다. 아마도 윗글에서 논산지역에도 살고 있다는 표현이 저희쪽을 말씀하신 것 같았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저의 집안어른들은 옛날부터 청주시향에 정기적으로 참석해 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60-70년대에는 청주시향에 참석하기 위해 시골의 집안 어른 10여명이 매년 저의 집에 오셔서 하룻밤 묵으신 다음 가시곤 한 기억도 있습니다. 지금은 차편이 발달하여 그렇게 하지는 않지만요. 그러면 충분히 연락처 등도 있어, 좀 더 상세한 정보를 얻어 책에 실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저의 7대조 할아버지의 부인이 노성에 사셨던 경주최씨였습니다. 그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7대조 할아버지가 아들 형제를 데리고 청주를 떠나 처가 동네에 정착하게 된 것입니다. 경주 최씨 할머니는 무남독녀로 지금도 저희 집안에서는 경주최씨 할아버지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당시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어 한양으로 후손들을 계속해서 과거를 보게 하는 등의 노력을 하다가 여러가지 사정이 겹쳐 발생하면서 집안이 기울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세기 말 다시 집안이 경제적으로 부유했으나 조선의 통제력이 상실된 시대탓인지 도적떼에 증조할아버지가 잡혀가고 그 후유증으로 젊은 나이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경제적으로 몰락하고 결국 또다시 세상이 바뀌는 그 큰 흐름을 타지 못하셨습니다. 현재는 고향 논산에는 몇가구만 남아 있고, 대부분은 대전과 서울 등 수도권에 살고 있습니다.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검사도 했던 사람도 있고 나름대로 각자 열심히 살고 있고, 정기적으로 모임도 있습니다.
따라서 인경소식에서 관련 내용들을 기술할 때에는, 발복한 집안의 경우에는 크게 상관이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집안의 경우에는 보다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보가 부족한 경우에는 인경소식을 통해 관련 정보를 찾는 노력을 기울여 주신다면 좀 더 충실한 정보를 바탕으로 좋은 내용을 내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노력하시는 모습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댓글목록
넓은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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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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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일가님 반갑습니다. 좋은 글 올려 주시어 감사합니다.
일가님께서 전해들은 선조관련 이야기도 이 다음엔 충분히 훌륭한 자료로서의 역할을 하리라고 봅니다. 일가님의 글을 읽으면 우리 선조님들께서 조상을 위하여 얼마나 애쓰셨는 지 그 마음과 공경심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면을 채우기 위한 소식지라기 보다는 철저한 고증과 정성이 깃든 일가 소개를 원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인경소식 1월호 6쪽의 “청주한씨 할머니의 아버지는 郡事仲蔓을 지내셨으며...”에서 ‘郡事仲蔓’은 ‘郡事(군사, 군수)를 지내신 휘 仲蔓(중만)’의 오류인 듯합니다. 그리고 같은 책 7쪽 “一云縣監을 지내셨다...”은 ‘혹은 현감을 지내셨다고 이른다’가 맞을 듯합니다.
문중의 책자 발간엔 신중한 고증과 교정이 필요하며, 선조를 외경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서 오자, 오류가 없게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문장의 투박함은 차치하더라도 ,위와 같은 오류는 문중 일을 하는 본성 분의 글이라 하기에는 너무 지나친 감이 없지 않습니다.
대사성공파 31세 漢益 삼가 씀.
불곰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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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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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 부강님 그리고 넓은벌님 새해에도 강녕하시고 두루 다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두분과 같이 종사에 지대하신 관심과 활동하심은 <종사발전의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하오니 고맙고 감사하옵니다.
◆◆◆ 종사의 발전을 누가 이루겠습니까 ? 그 첫걸음은 종사에 관심을 갖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 두분을 비롯하여 많은 종인들의 종사에 관한 관심과 활동을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