廉謹吏 左承旨(中樞院副使) 李宜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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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벌 작성일11-11-24 20:14 조회340회 댓글2건본문
중추원 부사 이의흡의 졸기입니다.
좌승지를 역임한 공은 廉謹吏로서 언행이 사리에 맞고 청렴하고 유능한 관리였다고 합니다. 두 아들 장례원 판결사공 휘 元孝와 충청감사, 청백리공 휘 愼孝의 업적과 청렴도 부친의 인품과 언행의 영향일 것입니다.
승지공, 판결사공, 청백리공이라는 말속엔 존경과 흠모의 정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虛名이 正名을 이기고 , 正名을 부끄러워하며 虛名으로 부르기 시작하는 후손도 있습니다.
1450년 5월 3일의 졸기는 승지공께서 일생을 어떻게 사셨는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 이의흡(李宜洽)이 졸(卒)하니, 임금이 관곽(棺槨)과 부물(賻物)을 하사(下賜)하였다. 이의흡은 동궁 행수(東宮行首)에서 출신(出身)하여 광흥창 사(廣興倉使)에 임명되고, 과거(科擧)에 올라서 여러 번 승진하여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에 이르렀다. 그때 하연(河演)이 판이조사(判吏曹事)를 겸무(兼務)하고 있었으므로, 그 족속(族屬) 윤삼산(尹三山)을 장령(掌令)으로 삼고자 하여 미리 사람들의 입에 퍼뜨렸는데, 제목(除目)이 내려오니 하연(河演)이 전일의 감정(憾情)을 품고 내쳐서 영흥 부사(永興府使)로 삼고, 또 정갑손(鄭甲孫)을 내쳐서 함길도 도관찰사로 삼았다. 이의흡(李宜洽)은 임기(任期)가 차기 전에 승정원 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로 발탁 임명되고 승진되어 좌승지(左承旨)에 이르렀으나, 병으로써 사직(辭職)하였으므로 이에 이 관직에 임명되었다. 이의흡은 성품이 온화하고 선량(善良)하며 말과 행실이 구차스럽지 않았으므로, 이르는 곳마다 청렴하고 재간 있는 사람으로 칭송되었다.(한국고전번역원 번역본입니다.)
○丙午/中樞院副使李宜洽卒。 上賜棺槨及賻。 宜洽, 出身東宮行首, 授廣興倉使, 登第累遷, 至司憲執義。 時河演, 兼判吏曹事, 欲以其族尹三山爲掌令, 預播人口, 及除目下, 果拜掌令, 宜洽與大司憲鄭甲孫, 力爭罷之。 遷判典農寺事, 演挾前憾, 出爲永興府使, 又出甲孫, 爲咸吉道都觀察使。 宜洽考未滿, 擢授承政院同副承旨, 陞至左承旨, 以病辭, 乃拜是職。 宜洽性溫良, 言行不苟, 所至以廉幹稱。
댓글목록
불곰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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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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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 벏은벌님!!!
◆ 족보에도 기록되지 않은 <가선대부 중추원사(諱 宜洽)공의 행적인 귀중한 자료를 올려주시어 감사합니다.
◆ 이렇게 종사(宗史)를 알차게 연구하시고 발표하시는 종원들이 계시는 한 <전의이씨 화수회의 앞날>은 무궁한 발전이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 참으로 고맙고 감사합니다.
넓은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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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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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대부님 고맙습니다. 破邪顯正하시는 어르신의 연찬 정진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