丁卯大同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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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벌 작성일11-11-01 17:43 조회667회 댓글5건본문
《丁卯大同譜》4쪽, 〈成化草譜序〉에 “李氏出於全義而蔓然東方禮安之李亦一源也”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成化草譜〉는 현존하지 않고 서문만이 후대 족보에 실려 전한다.
같은 책 25쪽, 〈청강공(淸江公)께서 안로공(安璐公)에게 보낸 편지〉내용 중에, “文莊公께서 文義公에게 주신 시를 族譜에 실어 전하지 않는다면 흠결이 되지 않겠습니까?” 하고, 바로 “문장공(文莊公)은 불행히도 자손이 없지만 정당공(政堂公)은 지금 우리 판부태감(判府台鑑)의 직계 선조입니다.”라는 글이 실려 있다.
또 상편 2쪽엔 大將軍 彦昇의 둘째아들로 檢校僉議政丞 ‘지저(之氐)’가 실려 있으니, 의혹만 증폭될 뿐이다.
〈成化草譜〉를 보지 못했고, 〈淸江公與安公書〉도 역시 정묘대동보를 통하여 본지라, 원문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文莊公과 文義公의 赫赫한 業績을 高揚하는 일 못지않게 上系를 硏究하여 바로잡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 新編大東韻玉에는“(全義)王太祖功臣太師李棹之後 (禮安)李之氏檢校僉議政丞 初封禮安
君 後改封承安君”이라는 기록이 보인다.
댓글목록
이준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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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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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정당공은..족보를 찾아보면 보이겠지만..
大將軍 彦昇의 둘째아들로 檢校僉議政丞 ‘지저(之氐)’의 기록이 있는 듯 한데..중요한 자료이지요.
上系를 硏究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는데에 동감입니다.
넓은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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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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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정당공(政堂公)은 정당문학을 지낸 문의공을 뜻하는데, 고려사나 고려사절요에는 거의 기록이 없고 동문선에 묘지명이 실려 있어 관력과 집안 내력을 알 수 있습니다. 묘지명은 상당히 명문으로 문의공의 일생이 어떻했는 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10살 남짓에 선친께 전의이가 문의공파 몇대손이요, 청백공파 몇대손이라는 가르침을 받고 큰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또 우리마을은 모두 문의공 후손이 사는 집성촌인데, 노자 항렬의 전서공파 1가구가 사셨습니다. 이 어른의 별호가 동성타성을 막론하고 아무개 대부였습니다. 이는 우리 이성만의 자랑이며, 동조의 후손이라는 끈끈한 유대가 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소문중의 잘못된 위선사업을 바로잡으려고 했던 일은 차치하더라도, 고려시대 사셨던 선조의 상계를 하나 둘 연구하고 배우는 것도 후손으로서 큰 의미가 있다고 여깁니다.
핵심을 짚어가며, 감정적으로 대하지 말고, 차분히 연구하고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준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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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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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동감입니다...
넓은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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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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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新編大東韻玉에 전의 이씨에 이어 禮安 李氏 李之氏(初封禮安君, 後改封承安君)를 붙여 기록함은 함의하는 바가 많다. 承安君은 初封禮安君이니, 그는 분명 禮安 李氏의 시조가 틀림없을 것이다. 그분의 상계와 하계를 밝혀내는 일은 비단 예안이씨의 영광과 감격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도 점잖게 중앙도서관에서 뿌리찾기에 열중인 백발의 어른들의 열공에 고개가 숙여진다.
능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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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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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넓은별님!!!!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