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선생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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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벌 작성일11-10-27 21:57 조회292회 댓글4건본문
고산집에 실려 있는 고산 선생의 편지글 일부입니다..
"전의• 예안 이씨가 같은 근원에서 갈라졌다는 설은 이미 좌상(左相) 이명(李蓂)의 신도비명에 실려 있고, 또 이후기(李厚基) 씨의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장공이 예안으로 옮겨 봉군되었다는 설은 사적에 명확한 문구(文句)가 없고, 또 우리 집안 세계(世系)에도 문적(文籍)으로 기록된 것이 없으니, 어찌 의심스럽지 않겠습니까?
원주(原州) 이씨 평장사(平章事) 이지저(李之氐)를 비조(鼻祖)라고도 하는데, 저들은 그렇게 믿겠지만, 우리 가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 이지저와 제학공(提學公)이 동시대의 인물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판서공(判書公)께서 고려 말 화난(禍難)을 당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당시 익양공(翼襄公) 형제는 모두 어려서 문보(門譜)와 세첩(世牒)을 미처 수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천고(千古)의 한이 되고, 늘 이를 골똘히 생각하면 눈물이 저절로 흐릅니다."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고산 선생의 ‘不覺淚下’를 곱씹자니, 저도 마음이 아픕니다.
댓글목록
이준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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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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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아래 댓글에서도 언급했지만..이런 연구자세는 필요하다고도 볼 수 있지만..그 내용은..아무래도..기존의 족보를 부정하는 내용이 될 수도 있기에..그것이 바로.. 근간을 흐트릴 수 있는 내용..이라고도 할 수 있을 지도 모르지요..
넓은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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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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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대학자 고산선생은 본인께서 태사공의 후손으로 인식하셨고, 문장공께서 예안으로 분적한 사실을 밝혀내려고 했으며, 제학공과의 연결고리를 찾으려고 애쓰셨습니다.
고산선생의 '천고의 한'과 '흐르는 눈물'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습니다. 중앙도서관 및 각종 기관의 여산여해같은 전적 속에 비밀의 열쇠가 있지 않을까요? 미처 몰랐던 고산 선생에 대하여 알게 되어 행복합니다.
이준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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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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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좋은 말씀이지요..
넓은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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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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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인주이씨의 오기가 아니라면 원주에 사는 승안군파를 일컫는듯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