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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사공이 시조?

페이지 정보

넓은벌 작성일10-12-02 13:48 조회404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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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李棹는  금강나루터에서 뱃사공을 하던 李齒인데, 全義 李氏로 사성하고, 글자를 모르는 그를 위해서 「물 위에 돛대를 세운 것 같다.」는 모양의 글자인 도(棹)를 고려 태조가 주었다.』는 검증되지 않은 허무맹랑한 말이 인터넷엔 말할 것도 없고, 이사람 저사람 입에 오르내리고 있어 심히 유감입니다.

 시조께서 뱃사공이었다고 부끄러워 할 이유는 없겠지만, 엄연히 대대로 그 지방 실력자였는데 ‘뱃사공 집안’이라고 폄하한다면 통곡할 일일 것입니다. 나말여초에 뱃사공이 성(姓)이 있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고, 뱃사공으로 渡江策을 냈다는 기록도 보지 못했습니다. 사실이 아니라면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댓글목록

불곰님의 댓글

profile_image 불곰
작성일 10-12-02 17:58

1. 안녕하세요. 청주의 전서공 21세손 덕규입니다.

2. 넓은벌님과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3. 이번에는 신속히 처리되는지 기다려 보겠습니다.

4. 소생이 시조이신 태사공의 선대(공주)에 대하여도 종원 사이에서는 물론 종사기록 등에서도 여러 가지 잣대로 평하는 것을 보다 못하여 화수회 본부에 <청원서>를 2010, 09, 06에 보내드렸는데 아직 정식 회답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5. 화수회 본부에 보낸 <청원서> 복사본이 몇권 남아 있는데 필요하시면 아래 E-mail 주소로 연략 주시면 보내드리 겠습니다.
  lee39000@kornet.net

이준설님의 댓글

profile_image 이준설
작성일 10-12-03 10:30

넓은벌님과 전적으로 동감입니다만...李齒출생 200여년전의 조상이 뱃사공이었다는 說도 있지요..그래서 그 뱃사공의 산소를 중국의 노승이 명당에 잡아준 것이 지금 공주 영모제 뒷산 묘소인데..그 덕에 200여년이 지나면서 집안이 일어나서.. 李齒당시에는 이미 훌륭한 가문이 된 듯합니다..그 명당 덕에..금강주변 호족(지방의 거대 가문:명문거족)인..李齒는 금강을 건널려고 하는 왕건을 만나 도강하는 좋은 계책을 상주하여 그 계책으로 견훤을 치는데 큰 공이 있었으므로..나중에 개국2등공신이 됐다고 봅니다..정확한 기록은 없으나..대략..그런 연구자료는 책으로 발간된 적이 있지요..

이준설님의 댓글

profile_image 이준설
작성일 10-12-21 13:32

선대 조상님을 우러르는 것은 누구나 해야할 마땅한 도리이지만....

기미보 제1집171면에 보면..진양재집의 기록에 주호대사가 사공 이방이의
 
寬仁(너그럽고 인자함)한 것을 반갑게 생각하고..지극한 효성을 봐서
 
그 부친 이석재의 묘소를 구해준다는 내용이 있으며(만대토록 榮貴<영화롭고 귀함>)..
 
같은 내용이 경오보 제1권 96면에도 실려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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