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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응 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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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 작성일15-04-10 17:19 조회1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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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응 열사

“유서”

슬프다 나라의 주권이 없어지고 사람의 평등을 잃어버려 모-든 외교에 치욕이 망극 하니 진실로 핏기를 가진 이면 어찌 이를 참을 수 있으리오 슬프다 종묘사직이 폐허가 될 것이요 민족이 장차 노예가 될 것이다 구차히 살자하면 욕됨만 더하리니 눈감아 몰라 버리는 것이 나으리 로다 이렇게 결단 하고 나니 더 할 말이 없노라.

“비문의 글”

사람이 살았다가 죽는 것은 판연한 사실이언만 바르게살기 극히 어렵고 옳게 죽기 더욱 드문 것이다 어떻게 하면 바르게 사는 것인가 죽을 땅에 꼭 죽어야만 하는 것이니 이러한 사람이 만겁 인류 위에 몇 분이나 돼는 가 이런 분은 실로 우리 인류위에 해와 달의 존재다. 한국 근대 사상 이런 분이 계시니 대한 제국 영국 주차 서리공사 이한응 선생이시다. 때마침 동양의 풍운은 사나워 청일 노일 두 전쟁이 끝나고 승리는 일본으로 돌아가 일본의 마수는 장차 대한 제국을 병탐 하려하여 영일 동맹을 맺어 교활한 외교 진을 영국에 펴고 있으며 선생은 만리 이역에 외로운 몸으로 분연히 영국의 조야를 향하여 영일 동맹 개정을 결사반대 했으나 교환 조건에 눈이 어두운 영국은 마침내 일본을 둔하고 한국을 저 바리고 말았다. 슬프다 세계 대세는 한국이 일본의 마수에 떨어지지 않고는 다른 도리가 없게 되었다. 선생은 사절의 중대한 책임을 뼈아프게 느끼면서 광무 구년 을사 오월 십이일 결연히 독약을 마시어 영국 런던에서 자결 하시니 선생의 나이 겨우 삼십 이세이었다. 구슬픈 부음이 전파를 타고 세계에 퍼지니 한국의 조야는 땅을 쳐 통곡했고 세계 만인은 눈물을 흘려 의로운 이를 조상 했다. 선생은 죽을 땅에 죽었고 의기는 만고에 푸름을 뻗쳤다. 선생이 가신 뒤 광무 구년 십일월 십칠일 국치의 을사조약은 이루어 졌고 민영환 조병세 및 여러분이 선생의 뒤를 이어 자결해 가시니 선생은 최초로 대한 제국에 순국하신 선구자였다. 선생의 유해는 칠월에 고국으로 돌아오시어 용인에 안장해 모시고 나라에서는 내부협판을 증직 하시여 장춘단에 배향케 했다. 나라가 광복된 후 대한 제국의 뜻있는 사람들은 이에 비석을 세워 선생의 백옥 같은 절의를 천추만대에 기리 기념하는 바이다.

박종화 는 글 짓고 김충현 은 글씨 쓰다.

이한응 열사 추모회 세우다

이한응(李漢應) 열사는 고향이 용인이며 본관은 전의 이씨이다. 일제강점기 때에 영어 학교를 졸업한 후 영국 주차 서리 공사로 근무 중에 일본은 대한제국을 병탐 하기 위하여 영국과의 간교한 마수로 영일동맹을 맺는데 성공하게 되었다. 이에 책임을 통감하여 광무9년 5월 12일에 32세의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자결로 하직하였다.

그분의 영향을 받아 뜻있는 애국지사들이 자결을 하였으며 대표적인 인물로는 민영환 조병세 등이 있다. 이한응 열사의 비는 장춘단 공원에 수의로 모셔져 있다. 위에 적힌 글은 비석에 조각되어 있는 내용을 복사하여 기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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