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洲 李璖(禮安君 八世孫) 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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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벌 작성일11-11-28 16:48 조회358회 댓글3건본문
公의 諱는 璖이고 字는 光寶인데 禮安人으로 松洲는 그의 號이다. 鼻祖 高麗 僉議政丞 禮安君 諱 之氐의 八世孫으로 高祖는 僉節制使 諱 德生이고 曾祖는 司醞直長 諱 永培이며, 祖는 昌平縣令 諱 叙疇이고 考는 繕工監役 諱 櫓이다.
公은 1522년 式年試에 進士 壯元으로 入格하고 1536년 中宗 31년 別試 文科에 2等 1位로 及第하여 槐院(承文院)의 官吏로 뽑혔다. 그 후 典籍, 正郞,正言,檢詳舍人, 執義, 修撰,校理, 寺正, 安州牧使 등을 지냈다.
禮安李氏 家譜엔 “公은 글로써 名聲이 매우 높았고 어린나이에 科擧에 及第하여 淸宦과 華職을 차례로 맡았으나 不幸히도 壽命이 짧았고, 生年과 卒年을 記錄해 두지 못했다.”고 한다.
1690년(숙종 16년) 가을에 五代孫 李琩이 漢陽 興仁門안 옛 집터에서 東臯 李浚慶이 쓴 誌文을 發見했는데, 陶瓷 六板 중에서 깨진 首尾 1板씩만 收拾하였다고 한다.
그 誌文에 이르기를 “公은 性品이 孝友, 寬裕하고 堅確, 和易하며, 술에 취하더라도 정도에 벗어난 짓은 하지 않았다.”고 하며,
또 이르기를 “公께서 돌아기시니 朝野가 모두 매우 哀惜해 했다.”고 한다. 이런 事實이 새로 刊行된 東臯集에 실려 있다고 전하나 알 수 없다.
長男 夢遠은 縣令이고 次男 夢近은 唐津縣監을 지냈다.
松谷 李瑞雨는 舍人 松洲 李公 後誌銘에 “東臯가 쓴 誌文의 片鱗과 後孫 李琩이 적어준 譜牒에 依하여” 誌銘을 썼다고 했으나, 全義李氏나 또 다른 禮安李氏와의 聯關性이나 蓋然性에 대하여는 記錄한 바가 없다.
六板의 誌石중 남아있는 首尾 二片의 實物이 지금도 남아 있지 않을까?
禮安君派 禮安李氏의 自古傳來된 譜牒이나 家乘을 지금도 後孫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댓글목록
이준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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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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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지저파와는..현재 합보를 않고 있음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불곰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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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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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 넓은벌님!!!
1. 禮安君 八世孫인 松洲 (諱 璖)公의 글을 잘 읽었습니다.
2. 감사합니다.
넓은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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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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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먼저 禮安君에 封했다가 뒤에 承安君으로 改封한 이유는 무엇일까? 承安君이란 禮安君을 계승했다는 뜻일까?
세종실록 지리지 예안현조에 토성(土姓)은 김(金)·이(李)·우(禹)·조(趙)·안(安)·강(姜)이라고 했는데, 李씨는 과연 누구의 후예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