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이...공리공론만은 아닌 듯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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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설 작성일09-03-02 15:02 조회352회 댓글1건본문
3달전에.. 온양그랜드호텔에서.. 외암사상연구소 주관 학술대회를 들으러 갔다오면서 그냥 받아온 책 4권을 아직 읽어보질 못하고..대충 훑어만 보는 도중에..평소 이기이원론에 대해서는 옛 양반들이 할일 없이 공리공론으로 논쟁만 하는 줄 알았으나..그 책 서문(제목 : '외암 이간의 철학과 삶' 간행을 경하하며, Page15~22, 7면)에 고려대 윤사순 명예교수가 쓴 내용을 대략 옮기면..
왜 경하할 일인가 하면..외암사상의 단순 이해를 위해서도 그렇고, 그 사상의 위상으로 보아..한국철학 진수의 계발을 위해서도 그렇다..그 책은 젊은 한글세대학자들이 '한국의 빼어난 전통철학 하나'를 세계화, 현대화하는 첩경으로 이용할 길을 연 성과이다.
번역이 창작보다 더 어렵다는 고백이 있지만...아무튼 번역진의 노고에 충심으로 감사와 위로를 전한다..
외암유고는 성리학설이 대부분인데 성리학의 번역은 차라리 한문으로 읽는 것이 더 쉽고 안전하다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번역이 어렵다..그 책에는 시, 상소문, 서간문이 많은데 그 시와 서간문에도 성리학의 문학적 표현과 담론으로 차 있다..그러니 그 번역의 고충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기에 위로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외암은 숙종3년(1677년)에 나서 영조3년(1727)에 51세로 졸하였으니..한국유학사에서 禮學시대라 일컬어지고..'인성물성의 동이논변'으로 성리학설의 탐구가 한 껏 빛나던 때이다..그는 20세 무렵에 과거보다는 문장에 관심이 기울었고...문장보다는 유학 경전에 담긴 사상의 탐구에 골몰했다. 그의 고조부, 증조부가 군자감 주부, 중추부사,수군절도사를 지냈고...양부와 생부는 부호군, 군수를 각각 역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번도 과거시험에 응시하지 않았고 그에게는 좋은 글벗(호중 8학사)을 함께하는 것이 낙이었다. 외암은 서인의 노론계인 '율곡-우암-수암'의 학통에 들게된다. 수암의 문인이 된 뒤로는 강문팔학사로 더 알려진다. 요즘과 달리 당시에는 스승을 만나는 것은 배우고 싶다는 것 보다는 인격의 고양이나 인생의 도덕적 선도가 더 긴요하여 스승을 찾는다...그는 자의, 참봉, 박사..같은 여러 요직을 천거받았으나 거절하고 부임하지 않는다. 그러나 49세에 회덕현감, 50세에 임금에게 학문과 정치를 논하는 경연관을 잠시 맡는다.
남당과 나눈 논변 등으로.. 그 이론이 학파를 형성하여 1세기반 이상 학계의 관심을 집중했고,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한국특유의 성리학'을 이뤘다. 논변의 큰 줄기는 두가지인데..
1. 인간과 금수 등 타물이 "그 본래적인 성을 가지고 있음에는 다 같다"는 것이 외암의 이론이고, 남당의 주장은 서로 다르다는 것.
2. "인간 마음의 본체인 '未發'에서는 애당초 善할 따름"이란 것이 외암의 주장이고..남당은 '그 본체에도 선과 악이 함께 다 있다'라고 주장한다.
그 두 견해는 유학의 경전에 뒷바침되어 있고...이론적 근거도 있다.
외암은 모든 현상존재가 본래적으로 지닌 순진무구함을 동일한 공통성으로 파악했고...이 생각은 자연히 '모든 것을 포섭하고 화합시키는 성향'을 띤다. 이 이론은 그 시대 군주가 대내적으로 지향하던 탕평책과 맥을 같이 한다. 이는 政敵(정적)이면 무조건 적대시하던 사색붕당을 종식시킬 근원적 사고방식에 해당한다. 대외적으로 오랑캐로 멸시되다가 호란 이후 북벌의 대상까지된 淸나라에 대한 융화책의 근거로도 이해될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사농공상의 신분적 차별을 비롯..반상, 남여, 主奴(종노字), 지주와 전호(소작료를 치르던 농민)의 귀천차별 등등의 해소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근거로도 이용될 이론이다. 외암의 '인성물성동론'은..오늘날의 민권, 인권 등의 의식으로 이해될 성격의 이론이다. 그 이론의 성격은..금수는 물론이고 자연 전체를 다 존귀시하여 '자연 친화의 성격'까지 읽어낼 수 있는 이론이다.그의 문집(詩 등)에 그런 성향이 배어 있고, 그래서 그의 사상은 현대에도 살아 있는 것이지 결코 쓸데없는 헛된 것(공리공론)이 아니다.
한국에 이런 철학이 있었음은 한국의 자랑이다. 그의 고장은 충무공 이순신의 고향과 같은 아산이다. (요약 끝)
윤사순교수 관련 자료...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front_sb&KEY=&p=%C0%B1%BB%E7%BC%F8
왜 경하할 일인가 하면..외암사상의 단순 이해를 위해서도 그렇고, 그 사상의 위상으로 보아..한국철학 진수의 계발을 위해서도 그렇다..그 책은 젊은 한글세대학자들이 '한국의 빼어난 전통철학 하나'를 세계화, 현대화하는 첩경으로 이용할 길을 연 성과이다.
번역이 창작보다 더 어렵다는 고백이 있지만...아무튼 번역진의 노고에 충심으로 감사와 위로를 전한다..
외암유고는 성리학설이 대부분인데 성리학의 번역은 차라리 한문으로 읽는 것이 더 쉽고 안전하다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번역이 어렵다..그 책에는 시, 상소문, 서간문이 많은데 그 시와 서간문에도 성리학의 문학적 표현과 담론으로 차 있다..그러니 그 번역의 고충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기에 위로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외암은 숙종3년(1677년)에 나서 영조3년(1727)에 51세로 졸하였으니..한국유학사에서 禮學시대라 일컬어지고..'인성물성의 동이논변'으로 성리학설의 탐구가 한 껏 빛나던 때이다..그는 20세 무렵에 과거보다는 문장에 관심이 기울었고...문장보다는 유학 경전에 담긴 사상의 탐구에 골몰했다. 그의 고조부, 증조부가 군자감 주부, 중추부사,수군절도사를 지냈고...양부와 생부는 부호군, 군수를 각각 역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번도 과거시험에 응시하지 않았고 그에게는 좋은 글벗(호중 8학사)을 함께하는 것이 낙이었다. 외암은 서인의 노론계인 '율곡-우암-수암'의 학통에 들게된다. 수암의 문인이 된 뒤로는 강문팔학사로 더 알려진다. 요즘과 달리 당시에는 스승을 만나는 것은 배우고 싶다는 것 보다는 인격의 고양이나 인생의 도덕적 선도가 더 긴요하여 스승을 찾는다...그는 자의, 참봉, 박사..같은 여러 요직을 천거받았으나 거절하고 부임하지 않는다. 그러나 49세에 회덕현감, 50세에 임금에게 학문과 정치를 논하는 경연관을 잠시 맡는다.
남당과 나눈 논변 등으로.. 그 이론이 학파를 형성하여 1세기반 이상 학계의 관심을 집중했고,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한국특유의 성리학'을 이뤘다. 논변의 큰 줄기는 두가지인데..
1. 인간과 금수 등 타물이 "그 본래적인 성을 가지고 있음에는 다 같다"는 것이 외암의 이론이고, 남당의 주장은 서로 다르다는 것.
2. "인간 마음의 본체인 '未發'에서는 애당초 善할 따름"이란 것이 외암의 주장이고..남당은 '그 본체에도 선과 악이 함께 다 있다'라고 주장한다.
그 두 견해는 유학의 경전에 뒷바침되어 있고...이론적 근거도 있다.
외암은 모든 현상존재가 본래적으로 지닌 순진무구함을 동일한 공통성으로 파악했고...이 생각은 자연히 '모든 것을 포섭하고 화합시키는 성향'을 띤다. 이 이론은 그 시대 군주가 대내적으로 지향하던 탕평책과 맥을 같이 한다. 이는 政敵(정적)이면 무조건 적대시하던 사색붕당을 종식시킬 근원적 사고방식에 해당한다. 대외적으로 오랑캐로 멸시되다가 호란 이후 북벌의 대상까지된 淸나라에 대한 융화책의 근거로도 이해될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사농공상의 신분적 차별을 비롯..반상, 남여, 主奴(종노字), 지주와 전호(소작료를 치르던 농민)의 귀천차별 등등의 해소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근거로도 이용될 이론이다. 외암의 '인성물성동론'은..오늘날의 민권, 인권 등의 의식으로 이해될 성격의 이론이다. 그 이론의 성격은..금수는 물론이고 자연 전체를 다 존귀시하여 '자연 친화의 성격'까지 읽어낼 수 있는 이론이다.그의 문집(詩 등)에 그런 성향이 배어 있고, 그래서 그의 사상은 현대에도 살아 있는 것이지 결코 쓸데없는 헛된 것(공리공론)이 아니다.
한국에 이런 철학이 있었음은 한국의 자랑이다. 그의 고장은 충무공 이순신의 고향과 같은 아산이다. (요약 끝)
윤사순교수 관련 자료...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front_sb&KEY=&p=%C0%B1%BB%E7%BC%F8
댓글목록
이준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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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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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그날 질문자 중에... 왜 외암사상이 유명하고 훌륭한 이론인가를 질의하는 분이 계셨더랬는데...
아마 위의 본문 중 굵은 글 부분이 그 답인 듯 합니다...그날 오신 교수님 중에 어느 분은..이 외암사상이 이미 미,중, 일 등 외국에서 먼저 알아보고 연구중이라는 말씀도 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