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자료 : 이득영은..8세 문장공 이혼의 아들
페이지 정보
이준설 작성일16-11-12 23:27 조회129회 댓글0건본문
아래 자료 참조 바랍니다.
李得榮曰 吾先子 文莊 蒙菴 李混
華海師傳(화해사전)卷三 敍述편(22~23p에 記錄)
李得榮曰吾先子 文莊 蒙菴 李混 嘗言 易東(禹倬) 雲月(申賢) 師弟之論易一部 簡諒易曉 發明
啓蒙 誠後天繼先天而 衍易眞訣 其功大矣 且數藝 申子兼該 皇極太乙之訣 釋合備精 天地萬物
無不盡出於數中焉 亦簡而易諒而不越乎 一編之內 其理則 程子 所謂 始一中萬末 復爲一之化
彌六藏密之 妙神而如示算諸掌矣 誡修身知性理 以爲本之工夫者能知 不然者惑而迷 其術者而己
然今言學焉者 迷惑衆修知鮮 可勝歎哉 《蒙菴 說止 此》
李得榮 曰吾先子 文莊 蒙菴 李混 嘗言 李得榮 曰 가로되 나의先子(돌아가신 중부(仲父) 文莊 蒙菴 李混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공자(孔子),맹자(孟子)와 같이 훌륭한 사람의 성(姓)에子字 높힘 뜻 )
위 자료에서 보듯이 "이득영이 말하기를.. 나의 부친 문장공은 호가 몽암이고 이름은 혼" 이라고 기록한...華海師傳(화해사전)卷三 敍述편(22~23p에 記錄) 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예안이씨 대종회 게시판 2016년11월11일자 문장공 이혼(李混)의 단암서원 문묘배향에 대한 사적과 고증 참조: 선암 이상준씨 글. http://www.yeanyi.or.kr/ )
DAUM사전에는 선자先子:
1. 예전에 살았던 사람2. 특히 돌아가신 아버지나 스승을 이른다. 라고 했으니.. 중부(작은 아버지,숙부)가 아니고..[선자=선고(돌아가신 아버지]로 해석하니 참고하시기 바라며,
{先君子선군자:남에게 돌아가신 자기 아버지를 이르는 말}로 모든 사전에서 해석하는데.
아래는..이득영을 문장공의 아들로 본다는 내용입니다.
다른 고려때 자료를 참고하면... 상기 이득영(전법총랑)은 문장공을 선군자라고 칭한 자료도 있음을 참고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의 추측으로는.. 이득영이 문장공의 아들(친자이거나 아니면 系子< = 양자> )이였는데, 고려말 혼란시에 종족보존 차원에서 전서공(자화)의 후손으로 즉 전서공의 아들로 표기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요약하면 문장공의 아들을 사회상혼란으로 전서공의 아들(혹은 양자)로 표기하여 그대로 전서공의 아들로 내려온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즉 원래는 문장공의 후손이었는데, 이득영의 후손들이 정적(반대파)으로부터 후손들을 보호하기 위해 문장공의 후손이 아니고, 전서공의 후손이라고 표기함으로써, 이송(전법판서 : 예안 3세=시조 이익의 손자)의..3족을 멸하는 난으로부터 피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지요.
즉 원래는 전서공의 후손이었는데.. 문장공의 양자로 갔다가.. 난으로.. 다시 전서공의 후손으로 표기됐다고 추측해 봅니다. 아니면.. 원래부터 문장공의 아들인데.. 3족을 멸하는 난리로 인하여 후손보존 차원에서..전서공의 후손으로 표기하여 3족을 멸하는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봅니다.
1. 예전에 살았던 사람2. 특히 돌아가신 아버지나 스승을 이른다. 라고 했으니.. 중부(작은 아버지,숙부)가 아니고..[선자=선고(돌아가신 아버지]로 해석하니 참고하시기 바라며,
{先君子선군자:남에게 돌아가신 자기 아버지를 이르는 말}로 모든 사전에서 해석하는데.
아래는..이득영을 문장공의 아들로 본다는 내용입니다.
다른 고려때 자료를 참고하면... 상기 이득영(전법총랑)은 문장공을 선군자라고 칭한 자료도 있음을 참고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의 추측으로는.. 이득영이 문장공의 아들(친자이거나 아니면 系子< = 양자> )이였는데, 고려말 혼란시에 종족보존 차원에서 전서공(자화)의 후손으로 즉 전서공의 아들로 표기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요약하면 문장공의 아들을 사회상혼란으로 전서공의 아들(혹은 양자)로 표기하여 그대로 전서공의 아들로 내려온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즉 원래는 문장공의 후손이었는데, 이득영의 후손들이 정적(반대파)으로부터 후손들을 보호하기 위해 문장공의 후손이 아니고, 전서공의 후손이라고 표기함으로써, 이송(전법판서 : 예안 3세=시조 이익의 손자)의..3족을 멸하는 난으로부터 피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지요.
즉 원래는 전서공의 후손이었는데.. 문장공의 양자로 갔다가.. 난으로.. 다시 전서공의 후손으로 표기됐다고 추측해 봅니다. 아니면.. 원래부터 문장공의 아들인데.. 3족을 멸하는 난리로 인하여 후손보존 차원에서..전서공의 후손으로 표기하여 3족을 멸하는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봅니다.
현재 족보상에 .. 이득영은 전서공의 아들로 기록돼 있지요...
DAUM사전에 보면..
典法 전법 : 지켜야할 규범
摠郞 총랑
1. [역사] 고려 시대, 상서육부(尙書六部)를 고쳐서 일컬은 사사(四司) 및 육사(六司)의 차관(次官)2. 1275(충렬왕 1)년에 사사(四司)로 고쳤다가 1362(공민왕 11)년과 1372(공민왕 21)년에 육사(六司)로 고쳤다.
즉 '典法摠郞 = 법제차관' 으로 볼 수 있지요.
전법판서 이송은..현재로는 법무장관격으로 봅니다...
DAUM사전에 보면..
典法 전법 : 지켜야할 규범
摠郞 총랑
1. [역사] 고려 시대, 상서육부(尙書六部)를 고쳐서 일컬은 사사(四司) 및 육사(六司)의 차관(次官)2. 1275(충렬왕 1)년에 사사(四司)로 고쳤다가 1362(공민왕 11)년과 1372(공민왕 21)년에 육사(六司)로 고쳤다.
즉 '典法摠郞 = 법제차관' 으로 볼 수 있지요.
전법판서 이송은..현재로는 법무장관격으로 봅니다...
{참고자료 : 고려후기 학자 신현이 지은 華海師全과.. 고려말 문신.학자인 권근이 지은 陽村集에 전서공 이자화의 삼남인 이득영이 문장공 이혼의 양자로 입록됐다는 기록도 있으며...고려사 열전의 '문장공전'중반부에 문장공이 두 아들을 발탁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전의이씨 족보중 현존 崔古인 성화초보<조선초 서기1476년도판> 서문에도 "전의이씨와 예안이씨는 같은 뿌리이며, 비조는 태사공 이도이다" 라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그후 서기1575년판 만력보 등 모든 족보에서 전의와 예안은 같은 뿌리라는 기록이 있는 걸로 압니다. 조선 중종때 나라에서 간행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문의공 이언충이 문장공 이혼의 손자로 기록돼 있고..효정공 이정간이 이언충의 6대손으로 기록.}
華海師傳(화해사전) : 조선 조(朝鮮 朝)시대에 금서(禁書)로 역성혁명(易姓革命)세력과
삼봉 정도전(鄭道傳)에 의해 훼철(毁撤)되었던 책이 근세(近世)에 발현(發顯)되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