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경소식 통권 35호 중추원사공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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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익 작성일12-09-28 13:24 조회148회 댓글0건본문
인경소식 통권 35호 "중추원사공 휘 宜洽 할아버지와 그 후손들"을 읽고
누차 제가 잘못된 부분을 여러 경로로 말씀 드렸지만 전혀 시정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좌승지공(휘 宜洽)의 아버님이신 휘 作께서는 철원부사로 증직된 적이 없고, 과거 급제는 공양왕 2년이 아니라 우왕(禑王) 6년(1380)입니다.
그 후 공은 지평(持平), 조선조에 들어와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 통정대부철원도호부사(通政大夫鐵原都護府使)를 지내시고,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추증되었습니다. 그리고 철원으로 귀양 가셨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또한 휘 宜洽공이 경기도관찰사, 충청도관찰사를 지냈셨고, 元孝공은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했다고 쓴 것은 허구에 불과합니다.
1580년(萬曆庚辰 선조 13년) 5월에 세운 병판공 신도비에 의하면 “壬辰以都承旨 特陞爲忠淸道觀察使 墍祖及考 三世連按 世未嘗有也”라고 되어 있습니다.
곧 휘 愼孝공-휘 德崇공- 휘 龜齡공 삼대가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判決事 諱 元孝 公의 長男이신 諱 命崇 副提學公 以下 三代 墓所를 忠州 숭선리鷲嶺山으로 1990년 봄 이장할 때, 判決事公의 神壇을 조성하고 3자의 자그만 빗돌에 "전의이씨 장예원판결사 諱 元孝之壇"이라고 각자하여 세웠습니다.
이보다 앞서 파주의 副提學公 묘소 주변을 둘러보고 判決事公의 실전된 묘소를 찾았으나 公과 관련된 어떤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안타깝고, 지금도 송구한 마음 금할 수가 없습니다.
더 이상 오류가 없게 철저히 고증하거나 자료를 검증하여 게재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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